[담화] 2020년 제 10회 생명주일 담화
- 작성일2020/04/2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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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생명 주일 담화 '하느님만이 생명과 죽음의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수호하며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고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제정한 생명 주일이 어느덧 10돌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또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이 반포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 뜻깊은 해에 교회는 ‘하느님만이 생명과 죽음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인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예방과 퇴치를 위하여 애쓰고 계신 모든 이에게 깊이 감사하며,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가족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이들과 유가족들에게도 주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돌보는 노력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통하여 절감하였습니다. 실제로 생명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연적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모든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우리의 책무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하느님 손에, 그분 권능에 달려”(「생명의 복음」, 39항) 있고, 생명과 죽음의 유일한 원천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심을 명심하면서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고자 합니다. 2. 교회는 인간 생명이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2019년 4월 11일 헌법 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이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 이전까지 관련 법안을 개정하라고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낙태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사회는 낙태 합법화의 길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더 올바른 법을 마련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고 낙태가 만연하는 사회상을 쇄신해 나가면서, 태아와 임신한 여성을 보호하고 남성과 여성이 공동 책임을 지며 의사와 의료 기관이 양심적으로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야 할 것입니다. 3. 생명의 시작과 관련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획기적인 과학 기술로 평가받고 있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신기술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우생학적 사고의 개입, 수퍼 베이비 추구와 맞춤 인간 형성, 남녀 차별과 장애인 차별의 악습 양산과 정당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황금 만능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첨예화된 ‘부익부 빈익빈’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재능과 노력보다 조작된 유전자의 힘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배아 연구와 인공 수정, 유전자 진단과 조작, 응급 피임과 낙태 같은 의과학 기술은 ‘인간의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와 관련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 생명은 배아에서 태아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달합니다. 이를 무시한 채 인간의 자의적 기준으로 ‘인간 생명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인간 생명을 위하여 활용되어야 할 의과학 기술이 어떻게 인간 생명을 도구화하고 수단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인간의 생명은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연적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통스럽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 전문가 상담, 열악한 환경 개선, 사회 안전망 구축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6. 생의 말기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성의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안에서 생을 인위적으로 마감하는 안락사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지면서 이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 참여하는 구원의 한 여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내치지 말고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그 가족 모두를 신체적, 심리 정서적, 영적 차원에서 돌보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와 말기 돌봄 활동을 통하여 고통과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이겨 나가면서 생과 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안락사의 유혹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옹호하고 증진하는 것,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이는 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맡기신 임무”(「생명의 복음」, 42항)입니다. 다시 한번 코로나19의 예방과 생명을 살리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며, 이 위기를 잘 극복하여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하루빨리 안정과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을 누리리이다”(시편 16[15],11). 2020년 5월 3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