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주간 기획 2] 쓰레기가 넘쳐난다
- 작성일2020/06/24 02:38
- 조회 398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찬미받으소서' 1장)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찬미받으소서', 16항) 프란치스코 교종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거듭거듭 제시하는 세계 이해입니다. 이렇게 바라본 세상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입니다.(1항) 인간을 포함하여 ‘집’ 안의 모든 것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여기에는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의 단절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존재와 생명 차원의 깊은 유대로 연결되어 서로의 덕분으로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근원적 유대는 감상적인 인식이 아니라 생태학의 근본 법칙입니다. 생태학의 지평을 열었고 현대의 환경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저술가 레이첼 카슨은 말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침묵의 봄")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인간이 현실에서 독립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절대적 지배자를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 자체가 붕괴됩니다.”(117항) 인간이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지배자로 행세한 결과, 폭력적 개발로 자연환경은 파괴되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소비가 일상화되는 ‘버리는 문화’가 널리 퍼졌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 지구는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변하고 있습니다.(21항)
보이는 쓰레기, 플라스틱: 5초 vs. 20분 vs. 300년
제작 시간 5초, 사용 시간 20분 정도라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면 자연 분해에는 최대 수백 년이 걸립니다. 플라스틱이 세상에 나온 지가 100년 남짓하니,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은 아직 대부분 세상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겁니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은 1인당 한 해 평균 98킬로그램으로 세계 1위입니다. ‘코카콜라’가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 매년 1200억 개, 모두 잇대면 지구를 700번 돌 수 있습니다. 매년 800만 톤의 쓰레기가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만들었습니다.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넓이가 한반도의 6배를 넘습니다. 플라스틱만이 아닙니다. 패스트 패션으로 의류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종이 쓰레기, 전자 쓰레기, 산업 쓰레기도 만만치 않습니다.(21-22항) 이 모든 쓰레기는 산업화 이후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산물입니다.
감춰 놓은 쓰레기, 고준위 핵폐기물: 4년(1년) vs. 10만 년
우리나라는 현재 핵발전소 24기(고리 3기, 신고리 4기, 월성 3기, 신월성 2기, 울진 6기, 영광 6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고리 5, 6호기를 짓고 있습니다. 핵연료는 4년(월성은 1년)을 사용하면 ‘사용후 핵연료’라는 고준위 핵폐기물이 됩니다. 이렇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한 해 750톤 정도입니다. 치명적으로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최소 10만년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차폐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는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가 아니고, ‘10만 년’은 기껏해야 4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인류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렇게 위험한 핵폐기물을 발전소 내에 그냥 보관해 온 임시저장소가 거의 차고 있습니다. 월성은 내년 11월이면 포화상태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지 두 개가 있습니다. 첫째, 임시저장소가 다 차면, 핵발전을 중지한다. 둘째, 임시저장소를 더 짓고 핵발전을 계속한다. 안전과 환경의 눈으로 보면, 당연히 첫째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방적인 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재검토위원회’는 월성의 임시저장소(맥스터) 증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월성에서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감당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대책도 없이 계속 쏟아내겠다는 겁니다. 이 핵폐기물도 우리가 이룩한 핵산업이라는 ‘발전’의 산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쓰레기, 온실가스: 1.5도 vs. 12년
2015년 12월 파리, 세계 195개국은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2도로, 가능하면 1.5도로 제한할 것을 골자로 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2018년 10월 송도, 제48차 IPCC총회는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이 권고를 따르려면 2030년 탄소배출을 2010년 대비 최소 45퍼센트로 줄이고, 2050년에 ‘탄소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이미 1도 정도 올랐고, 상승 속도는 점점 빨라져 현재는 10년에 0.2도 정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를 가정하면 1.5도 상승까지 아무리 길어도 20년밖에 남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5)는 탄소 배출 절감에 대한 국제 사회의 구체적인 결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올해 예정이던 영국 글래스고의 COP26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취소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입니다.(23-26항) ‘기후변화’라는 암초는 ‘저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암초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유럽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멸종위기종’이라며 ‘기후파업’(‘결석시위’)을 벌리며 비상행동을 시작했고, 이 행동은 세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지난해 영국의 가디언지는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고,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가던 길을 가고 있습니다.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에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한국은 기존의 계획에 따라 7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고집합니다. 온실가스 또한 산업화가 이룬 ‘발전’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 발전을 멈출 기색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쓰레기: 공정과 정의의 문제
“인간 환경과 자연 환경은 함께 악화됩니다.”(48항) 우리가 세상을 파괴한 결과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48항) 재난은 같지만, 고통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가 먼저 피해를 보고 고통을 겪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재난 피해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재난의 실태를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바이러스 감염 발생은 야생동물 서식처 파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와 같은 자연의 훼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 소수의 개발자들이 높은 이윤을 목표로 무분별한 개발과 채굴을 감행한 결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몫입니다. 환경문제로 생겨나는 재난은 공정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 성장을 요구하고, 성장은 생산의 증가를 요구합니다. 생산된 것을 소비하자니, 소비가 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주의 문화는 필연입니다. 생산과 소비가 서로를 끝없이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입니다. 멈추면 추락합니다. 성장을 위해 계속 더 빨리 달려야 합니다. 생명이 아니라 이윤에 눈먼 경제에서는 자연도 사람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이때도 자연과 가난한 이들이 일차적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근원적 유대의 세계에 부합하는 생활양식과 경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근원적 유대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 배려, 환대할 것을 요구하지만, 끝없는 성장과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불어닥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도 ‘녹색’이 바탕과 중심이 되지 않으면 단기적인 경기 부양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현재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근원적 전환’입니다. 근원적 전환을 통해서만 우리는 산업화 이후의 성장과 발전으로 부서지고 무너져내린 우리 공동의 집을 다시 보듬어 세울 수 있습니다. 죽음의 악순환을 벗어나 생명의 선순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찬미받으소서', 16항) 프란치스코 교종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거듭거듭 제시하는 세계 이해입니다. 이렇게 바라본 세상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입니다.(1항) 인간을 포함하여 ‘집’ 안의 모든 것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여기에는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의 단절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존재와 생명 차원의 깊은 유대로 연결되어 서로의 덕분으로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근원적 유대는 감상적인 인식이 아니라 생태학의 근본 법칙입니다. 생태학의 지평을 열었고 현대의 환경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저술가 레이첼 카슨은 말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침묵의 봄")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인간이 현실에서 독립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절대적 지배자를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 자체가 붕괴됩니다.”(117항) 인간이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지배자로 행세한 결과, 폭력적 개발로 자연환경은 파괴되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소비가 일상화되는 ‘버리는 문화’가 널리 퍼졌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 지구는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변하고 있습니다.(21항)
보이는 쓰레기, 플라스틱: 5초 vs. 20분 vs. 300년
제작 시간 5초, 사용 시간 20분 정도라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면 자연 분해에는 최대 수백 년이 걸립니다. 플라스틱이 세상에 나온 지가 100년 남짓하니,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은 아직 대부분 세상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겁니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은 1인당 한 해 평균 98킬로그램으로 세계 1위입니다. ‘코카콜라’가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 매년 1200억 개, 모두 잇대면 지구를 700번 돌 수 있습니다. 매년 800만 톤의 쓰레기가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만들었습니다.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넓이가 한반도의 6배를 넘습니다. 플라스틱만이 아닙니다. 패스트 패션으로 의류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종이 쓰레기, 전자 쓰레기, 산업 쓰레기도 만만치 않습니다.(21-22항) 이 모든 쓰레기는 산업화 이후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산물입니다.
감춰 놓은 쓰레기, 고준위 핵폐기물: 4년(1년) vs. 10만 년
우리나라는 현재 핵발전소 24기(고리 3기, 신고리 4기, 월성 3기, 신월성 2기, 울진 6기, 영광 6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고리 5, 6호기를 짓고 있습니다. 핵연료는 4년(월성은 1년)을 사용하면 ‘사용후 핵연료’라는 고준위 핵폐기물이 됩니다. 이렇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한 해 750톤 정도입니다. 치명적으로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최소 10만년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차폐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는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가 아니고, ‘10만 년’은 기껏해야 4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인류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렇게 위험한 핵폐기물을 발전소 내에 그냥 보관해 온 임시저장소가 거의 차고 있습니다. 월성은 내년 11월이면 포화상태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지 두 개가 있습니다. 첫째, 임시저장소가 다 차면, 핵발전을 중지한다. 둘째, 임시저장소를 더 짓고 핵발전을 계속한다. 안전과 환경의 눈으로 보면, 당연히 첫째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방적인 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재검토위원회’는 월성의 임시저장소(맥스터) 증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월성에서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감당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대책도 없이 계속 쏟아내겠다는 겁니다. 이 핵폐기물도 우리가 이룩한 핵산업이라는 ‘발전’의 산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쓰레기, 온실가스: 1.5도 vs. 12년
2015년 12월 파리, 세계 195개국은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2도로, 가능하면 1.5도로 제한할 것을 골자로 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2018년 10월 송도, 제48차 IPCC총회는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이 권고를 따르려면 2030년 탄소배출을 2010년 대비 최소 45퍼센트로 줄이고, 2050년에 ‘탄소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이미 1도 정도 올랐고, 상승 속도는 점점 빨라져 현재는 10년에 0.2도 정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를 가정하면 1.5도 상승까지 아무리 길어도 20년밖에 남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5)는 탄소 배출 절감에 대한 국제 사회의 구체적인 결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올해 예정이던 영국 글래스고의 COP26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취소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입니다.(23-26항) ‘기후변화’라는 암초는 ‘저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암초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유럽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멸종위기종’이라며 ‘기후파업’(‘결석시위’)을 벌리며 비상행동을 시작했고, 이 행동은 세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지난해 영국의 가디언지는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고,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가던 길을 가고 있습니다.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에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한국은 기존의 계획에 따라 7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고집합니다. 온실가스 또한 산업화가 이룬 ‘발전’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 발전을 멈출 기색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쓰레기: 공정과 정의의 문제
“인간 환경과 자연 환경은 함께 악화됩니다.”(48항) 우리가 세상을 파괴한 결과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48항) 재난은 같지만, 고통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가 먼저 피해를 보고 고통을 겪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재난 피해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재난의 실태를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바이러스 감염 발생은 야생동물 서식처 파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와 같은 자연의 훼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 소수의 개발자들이 높은 이윤을 목표로 무분별한 개발과 채굴을 감행한 결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몫입니다. 환경문제로 생겨나는 재난은 공정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 성장을 요구하고, 성장은 생산의 증가를 요구합니다. 생산된 것을 소비하자니, 소비가 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주의 문화는 필연입니다. 생산과 소비가 서로를 끝없이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입니다. 멈추면 추락합니다. 성장을 위해 계속 더 빨리 달려야 합니다. 생명이 아니라 이윤에 눈먼 경제에서는 자연도 사람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이때도 자연과 가난한 이들이 일차적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근원적 유대의 세계에 부합하는 생활양식과 경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근원적 유대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 배려, 환대할 것을 요구하지만, 끝없는 성장과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불어닥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도 ‘녹색’이 바탕과 중심이 되지 않으면 단기적인 경기 부양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현재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근원적 전환’입니다. 근원적 전환을 통해서만 우리는 산업화 이후의 성장과 발전으로 부서지고 무너져내린 우리 공동의 집을 다시 보듬어 세울 수 있습니다. 죽음의 악순환을 벗어나 생명의 선순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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