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호활동

['찬미받으소서' 주간 기획 1] 각성과 행동
  • 작성일2020/06/24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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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후손들에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찬미받으소서' 160항)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는 올해 5월 16-24일을 ‘'찬미받으소서' 주간’으로 선포했습니다. 이 회칙이 다루고 있는 우리 공동의 집 지구의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우리도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종은 이 특별한 ‘주간’을 선포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부터 생태 위기의 현실을 각성하고 변화하자고 호소하십니다. 

툭하면 하늘을 희뿌옇게 만드는 미세먼지, 매일같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보면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부정하기 힘듭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와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해치는 삶의 양식을 고집한다면, 무한한 성장을 계속 추구한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파국’뿐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파국의 전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2000년 이후의 잦은 바이러스 창궐은 인간의 생태계 파괴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코로나19 재난이 보여 주듯이, 일단 파국이 닥치면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은 한순간에 변할 것입니다. 강제된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 줄 것입니다. 고통은 약자부터 겪겠지만, 결국은 누구도 피하지 못합니다. 인류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을 못하고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합니다. ‘멸종’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태’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사태의 엄중한 인식이나 극적인 변화의 조짐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마저 느껴집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를 '찬미받으소서' 주간에 초대하시며 행동하자고 호소하십니다. “생태 위기에 응답하십시오. 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을 돌봅시다. 이는 좋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교종의 호소는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온 현실을 고발하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외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새로운 길로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생명과 죽음의 기로에 섰습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하느님은 우리가 살기를 바라십니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많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늦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160항) 우리가 물려주어야 할 세상은 세상에 대한 창조주 하느님의 뜻인 창조질서가 온전히 보전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한계 속에서도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생명을 보듬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한 부분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생태적 균형과 질서를 존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깃든 세상, 가난한 이들에게 희년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예수의 사명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루카 4,18-19) 우리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생명의 길을 충실히 걷노라면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꿈’과 ‘문화적 꿈’과 ‘생태적 꿈”은 차츰 현실이 되어 갈 것입니다.('사랑하는 아마존' 7항) 
‘'찬미받으소서' 주간’이 생명으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우리가 기쁘고 힘차게 응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래 세대가 살 만한 지구를 물려주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첫 세대”가 될 것입니다.(160항)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